목사님이 설교에 갈라디아 6장 1절 말씀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을 설교 했다.
교인이 예배 마치고 차를 운전해 나오는 데 큰 승용차 한 대가 교인의 작은 차를 옆으로 들이받았다. 교인차는 너무 많이 찌그러져 문이 열리지도 않았다. 내리려고 힘을 주자 앞문이 그만 부서지고 말았다. 앞문을 떼어내며 차에서 내려 보니 사고를 낸 운전자는 자신의 승용차만 살피고 있었다. 운전자는 자기 차 범퍼가 얼마나 찌그러졌나 염려하는 눈길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하고 다른 운전자들처럼 삿대질까지 하며 한참을 다투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배에 들은 설교가 생각이 났다. 교인은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디 다친 데는 없으세요? 괜찮으십니까?” 그러자 상대 운전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호되게 욕을 얻어먹으며 크게 싸울 것이라고 예상하고 마음에 단단히 준비를 하고 있었는 데 오히려 자신을 위해서 생각해주는 말을 건네는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운전자는 얼굴 표정을 고치며 말했다. “아, 예, 괜찮습니다. 아니 어떻게 저한테 그런 얘기를 물어보실 수가 있습니까? 선생님은 어디 다치신데 없습니까? 병원에 가셔야죠.”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제가 이거 다 수리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이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병원도 가시구요.”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제가 이거 다 수리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이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병원도 가시구요.”
이미 엎질러진 물을 탓한다고 다시 담지는 못합니다. 화를 낸다고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당황하면 말이 앞서게 됩니다. 죄인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탄은 정죄와 비난으로 일을 틀어버리고 분열시키고 일이 이루어지지 않게 하지만 성령은 침착하게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고 상대를 정죄하는 일보다 문제해결에 집중하게하여 오히려 적대적인 관계를 좋은 관계로 바꾸게 하며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있도록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