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 아모스 7 장 10-17 절 “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네가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 이삭의 집을 향하여 공고하지 말라…
참 예언자 VS 거짓 예언자
예언자 또는 선지자를 가리키는 영어 ‘프라핏’(prophet)은 헬라어 ‘프로페테스’에서 나온 단어인데요, 이것은 ‘프로’라는 접두어에 ‘말하는 자’란 뜻의 ‘페테스’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헬라어로 예언자란 뜻은 시간적으론 ‘하나님의 시간을 꿰뚫어 보고 말하는 자’이고, 공간적으론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자’란 뜻을 지닌 것이죠. 또한, 히브리어로는 이 예언자를 ‘나비’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수동적으로 쓰일 때 ‘부름 받은 자’란 뜻을 지니고, 능동적으로는 ‘부르는 자, 선포하는 자’란 뜻을 지닙니다. 그러니까 예언자는 ‘앞날의 일을 미리 이야기하는 자’란 뜻이라기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백성들 앞에서 그 분의 뜻을 담대하게 선포하는 자’를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마샤와 아모스가 바로 그런 예언자들이었습니다. 아마샤와 같은 제도권의 예언자들은 성전의 제사장 출신이나 선지학교 출신이었던 반면에, 아모스는 양을 치고 뽕잎을 가꾸던 하층민 출신의 예언자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두 사람의 예언이 정 반대의 내용이었던 것이죠. 한 사람은 참 예언자였고, 또 한 사람은 거짓 예언자였던 것입니다.
이들의 차이는 먼저 ‘무엇에 붙들려 있는 자가 참된 예언자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샤는 체제의 변화를 원치 않던 기득권과 여론의 편에 서 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모스는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사람이었습니다. 서슬 퍼런 공권력과 왕의 권위, 제도 교회의 권위가 무섭고 부담스러웠지만, 아모스는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그 앞에 서고 있습니다.
이들의 또 다른 차이점은 ‘이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하는 선포의 내용이었습니다.
지금 아마샤는 하나님의 계약 백성으로서의 이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이기에 잘 될 것이란 믿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모스는 계약 백성의 의무와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계약 백성의 올바른 모습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아마샤가 세속적 성공과 축복을 강조하고 있다면, 아모스는 심판과 멸망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아마샤는 출애굽의 하나님이 민족을 지키실 것을 선포하고 있지만, 아모스는 출애굽의 하나님이 다시 애굽으로 돌려보내실 수도 있는 분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아마샤는 세속 정권이 하나님이 세워 주신 것이기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모스는 세상의 권력과 법도 하나님께 순종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말을 하는 아마샤는 사람이 원하는 선포, 권력이 원하는 선포에 치중했지만, 하나님의 말을 전하는 아모스는 하나님의 심장과 눈으로 세상을 보고 느끼고 선포했던 것입니다.
오늘 남북의 반목과 북미의 첨예한 갈등 가운데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갖고 살아갑니까? 오늘 우리는 예언자의 눈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시선이 아닌 주님의 눈을, 세상의 마음이 아닌 주님의 심장을 지니고, 세상의 말이 아닌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참된 예언자의 자리에 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을 위한 기도
거짓 예언이 난무하는 세상의 한 가운데서 예언자의 눈을 갖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꿰뚫어 보게 하시고, 세상의 한 가운데서 담대히 심판과 회복의 복음을 선포하는 예언자의 자리에 서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