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 장 1-9 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요 5:8-9)
베데스다의 법칙 VS 예수님의 법칙
오늘 베데스다 연못에서 일어난 사건은 아마도 3-4 월의 부림절이거나 아니면 유월절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여하튼 이런 큰 명절이 되면 유대인들은 흩어져 살던 곳에서 거의 모두가 예루살렘으로 모여듭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도성은 한 주간 동안 거대한 축제의 불야성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즐거운 잔치 마당에서 예수님의 시선은 잔치의 그늘에 숨어있는 사람들, 특별히 38 년 동안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치유해 주십니다.
오늘의 이야기에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가지의 삶의 법칙이 있습니다. ‘베데스다의 법칙’과 ‘예수님의 법칙’입니다. 낫고 싶어도 나을 수 없었던 병자에게 가장 큰 문제는 연못에 뛰어들기만 하면 낫는데, 이 환자는 연못에 뛰어들 수가 없었죠. 병약한 그를 데려다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죠. 그러나 더 크고 더 근본적인 문제는 연못의 물이 소용돌이칠 때 가장 먼저 딱 한 사람만이 그 연못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었습니다. 이것이 베데스다의 법칙입니다. 가장 앞선 사람만이 기회를 누리는 세상의 가혹한 법칙입니다.
그 법칙에 걸려 헤어나지 못한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물으신 것이죠. “정말 낫고 싶으냐? 그렇다면,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거라.” 그 한 마디로 그 병자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은 먼저 나서는 한 사람만이 선택될 수 있도록 만드는 세상의 시스템을, 세상의 무한경쟁의 그물망을 한순간에 해체해버리고 무력화시키는 것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주위의 환경에 지배되지 않고 언제나 중요한 것은 당당한 믿음의 주체로 살아가는 용기와 의지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세상의 인습적 지혜와 제도를 뛰어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인습적 지혜는 어느 사회나 공동체의 물려받은 전통을 다음 세대에 전해주며 그 전통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베데스다의 법칙은 바로 이런 세상의 인습적 지혜를 상징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것을 뛰어넘는 대안적인 길, 바로 그 전통을 전복시키는 혁명적인 능력을 갖는 가르침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세상의 법칙에 압도돼, 나 하나 사는 것만으로도 벅차하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다시 물으십니다. “네가 정말 낫고 싶으냐? 그렇다면 자리를 들고 일어나 담대히 걸어가라!”
오늘을 위한 기도
사랑의 주님, 때론 내가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도태된 실패한 사람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 끊임없이 낮고 천한 자를 위해 다가오신 주님의 손길을 경험하며 일어나길 원합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법칙에, 우리를 규정하는 분열의 시스템에 압도당하지 않길 원합니다. 예수님을 만나 세상을 새롭게 보고, 새로운 삶의 중심을 찾는 용기를 갖길 원합니다. 이 시대의 38 년 병자에게도, 그리고 분단 반세기 지난 한반도의 문제 앞에서도 베데스다의 법칙을 뛰어넘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의 법칙을 경험하고 고백하며 나누며 사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삶의 주인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