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3 장 10-14 절 “광야에 나가서 죽는 것보다 이집트 사람을 섬기는 것이 더 나으니 우리가 이집트 사람을 섬기게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출 13:12)
정신의 출애굽
열 번의 재앙 끝에 마침내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냅니다. 하지만 바로는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이 막막한 광야에 갇혀서 아직 헤매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곧 마음을 바꿔서 군대를 이끌고 추격에 나섭니다. 바로의 눈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전히 도망친 노예들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 오는 것을 본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왜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이렇게 죽게 만들었냐고 불평합니다. 심지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이집트의 노예가 되어 섬기던 이전의 삶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몸은 비록 이집트를 떠나왔지만 정신은 여전히 이집트의 노예였습니다. 출애굽은 탄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주님께서 들으셨기 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미 과거를 잊고 지도자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정신의 출애굽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스스로 근대화를 이룰 기회를 놓치고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았습니다. 이어서 민족끼리 두 편으로 갈려서 전쟁을 치루고 분단이 되어 65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치열하게 사느라 역사를 바로 세우고 민족정신을 세우는 일에 소홀히 했습니다. 홍해를 앞에 두고 대립하고 있는 바로와 이스라엘의 모습이 21 세기 한반도의 상황이 겹쳐지는 것은 과도한 상상일까요?
강대국들은 여전히 우리 민족의 운명을 움켜쥐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나라는 힘이 없는 약소국 임을 확인할 뿐입니다. 우리는 분단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때로 경제적인 이득을 따져 분단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우리의 굳은 생각들일지도 모릅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지금 이대로가 좋다며 안주하려는 마음, 외부의 힘에 의존하려는 마음, 냉전적이고 호전적인 생각들 말입니다.
모세는 이런 백성들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립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가만히 서서, 주님께서 오늘 당신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 보기만 하십시오.”(13)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헤아리면서 그 분의 섭리를 바라보고 따라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오늘을 위한 기도
주님, 우리 민족에게 정신의 출애굽을 허락하십시오. 한반도 평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굳은 생각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고 따라가게 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