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 장 1-11 절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느1:4-5)
민족을 생각하는 절절함
느헤미야가 웁니다. 느헤미야는 그의 할아버지 때,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나라를 빼앗긴 채, 포로로 끌려온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민 3 세였습니다. 우리처럼 미국에 살면서 이민 3 세대쯤 되면, 한국말을 잘하는 3 세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실 말이 이스라엘 사람이지, 그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가족들에게서 어깨 너머로 배운 것들이 고작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처음 만나는 느헤미야의 모습은 울며 슬퍼하는 모습입니다.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기 백성이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졌고, 성문들은 불타버렸다는 소식에 느헤미야는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폐허가 된 예루살렘의 소식을 전해 준 사람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관심을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수일 동안 슬피 울며, 금식 기도를 시작할 만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안고, 몸을 부들부들 떨며 황페한 예루살렘 성과 그 성에서 고생하고 고통 당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생각하며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사람인데, 호화로운 궁궐에서 편안히 지내면서, 하루하루 그냥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기도를 합니다. 그것도 금식 기도를 합니다. 자기의 민족, 동포들을 사랑하는 그 가슴 절절한 마음 때문에 그는 너무나 아팠고 그래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추운데서 떨고 있는 수 백명의 고통의 무게가 내가 누워 있는 침대의 이불보다 무겁지 않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괴로워한다 할찌라도 오늘 내가 누리고 있는 작은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개인주의가 심화되면서 남의 큰 고통보다 내 작은 기쁨을 더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느헤미야의 기도는 우리 기도의 대상과 범위가 얼마나 작아졌는지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허리가 잘린 채 분열과 갈등의 상징이 되어 버린 분단된 조국을 가슴 절절하게 생각하며 기도하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오늘 하루, 느헤미야처럼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분단된 조국이 아픔으로 다가와서 이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 시대의 느헤미야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을 위한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도 느헤미야와 같은 애통한 마음을 주옵소서. 나 자신의 영광만을 구하는 삶이 아니라 우리가 두고 온 분단된 조국의 현실, 그 참담한 사연들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게 하시고, 이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옵소서. 우리의 구세주 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